
- 제주시 일도이동 8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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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속의 작은 제주, 민속자연사박물관>
개관 33주년을 맞은 박물관으로서 자연과 문화, 주민 생활상 등 제주 전통과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공간이다. 고고민속 자료 10,642점, 국제보호조이며 천연기념물 제199호 황새표본 1점, 천연기념물 제191호인 한란(寒蘭) 등 자연사 자료 29,112점 등 총39,754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4,023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특히 도지정문화재 9점을 소장하고 있다. 유형문화재 5점(「탐라지도병서(耽羅地圖竝序)」, 「제주삼읍도총지도(濟州三邑都總地圖)」, 「귤수소조(橘叟小照)」, 병와 이형상의 「남환박물(南宦博物)」외 관련자료 1점), 문화재자료 2점(「목장신정절목(牧場新定節目)」, 「안민고절목(安民庫節目)」, 민속자료 2점(테왁・망사리, 상여) 등이다.
전시는 실물과 축소 모형, 디오라마(diorama) 기법을 도입했다. 제주의 상징관인 로비에는 한라산과 설문대할망, 삼성신화 등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또한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용암동굴, 산갈치, 남방애 등도 배치하였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지
삼성혈은 고・양・부 삼신인이 용출하여 탐라국을 창건한 삼성신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모흥혈(毛興穴)이라고도 부르며, 품(品)자 모양의 세 구멍(혈, 穴)이 남아있다.
고·양·부 삼신인은 수렵생활을 하다가 우마(牛馬)와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온 벽랑국(碧浪國) 삼공주를 맞이하여 혼인을하고 농경생활이 시작되었으며 탐라왕국(耽羅王國)으로 발전하였다고 전한다.
신비스러움을 더하는 것은 세 개의 지혈을 둘러싼 수백년 수령의 고목들이 모두 혈을 향하여,마치 경배(敬拜)하는 자태를 취한 모습이다. 더군다나 큰 비나 폭설이 내리더라도 일년 365일 비가 고이거나 눈이 쌓이는 일이 없는 성혈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경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고・양・부 후손들은 이곳 삼성혈에서 봄・가을에 제사를 모시고, 12월에는 제주도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건시대제를 지낸다.
최근에는 전현무 등이 출연하는 MBC 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 한반도편이 방송되어 더욱 제주 관광의 명소가 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호. 제주목의 치소(治所)를 둘러쌓았던 성터로 오현단(五賢壇) 남쪽에 그 일부가 복원되었고, 곳곳에 그 잔해가 남아 있다.
성의 규모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둘레 4,394자, 높이 11자로 기록되어 있으나 여러 차례 증축과 퇴축이 있은 후의 둘레는 6,120자, 높이가 13자로 각각 불어나 더욱 높고 견고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증축과 퇴축이 이루어진 이유는 성안에 물이 없어 백성들의 고통이 많았고 또 가락천과 산저천이 자주 범람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1565년(명종 20)에 목사 곽흘(郭屹)이 성을 산저천 밖으로 물려 쌓았고, 1599년(선조 32)에는 목사 성윤문(成允文)이 성을 5자 더 늘려 쌓고 각 성문 위에 망루를 세우는 한편, 남북의 두 수구에는 홍예(虹霓) 모양으로 남수각(南水閣: 雙虹霓)과 북수각(單虹霓, 뒤에 眼鏡橋라 불림)을 설치하였다. 또 성 남쪽에는 제이각(制夷閣)을 세웠으며, 성 위에는 적대(敵臺)와 포루(砲樓)가 설치되었다.
그 후 1652년(효종 3) 8월에 큰 비바람으로 남북 두 수구가 무너지자, 목사 이원진(李元鎭)이 그해 겨울에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봄에 완성하고 북수구 위에는 정자를 세워서 공신루(拱辰樓)라 하였다.
그러나 큰 비가 내릴 때마다 산저천이 범람하여 민가가 침수되므로 1780년(정조 4)에 김영원(金永媛)이 물난리를 피하고자 옛 성터를 따라 길이 551보, 높이 9자의 간성(間城)을 쌓아서 그 폐해를 방지하였는데, 이 간성에는 남북에 두 개의 문을 개설하여 남문을 소민문(蘇民門), 북문을 수복문(受福門)이라 하였다.
1847년(헌종 13) 봄에는 이의식(李宜植)이 북수구의 성을 물려 쌓아서 성 위에 천일정(天一亭)을 세웠고 또 간성도 더 쌓았는데, 이 때 수복문을 중인문(重仁門)이라 하여 현판을 바꾸었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호 「오현단」
성곽 안쪽의 오현단은 조선시대 제주 유학의 명소인 귤림서원이 있던 자리이다. 1578년(선조11년)제주판관 김정(1486~1521)을 기려 세운 충암묘가 효시인 귤림서원은 제주와 관련 깊은 오현(五賢)을 추모하고 유생들이 공부했던 일종의 사립대학이라 할 수 있다.
오현은 제주에 유배 왔던 김정, 정온, 송시열, 김상헌, 송인수 등 어진 선비 다섯 분을 일컫는다. 경내에 장수당 학사를 지어 유생들이 사서삼경을 배우도록 한 것은 1658년(효종6) 제주목사 이괴에 의해서라는 기록이 있다.
인재 양성터로 유서가 깊은 오현단에는 1907년 도내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인 의신학교가 세워졌었다. 1909년 공립제주농림학교가 자리잡았다가 이설한 이후 오현단에서 이름을 딴 오현중학교와 오현고등학교가 개교했다가 지난 1971년에 화북동으로 이설했다는 기록이 있다.
제주지방기상청은 1923년 5월 1일 제주측후소로 시작하여, 현재까지 약 100여년간 기후자료의 역사적 가치와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2015년부터는 청사 내에 제주지역 기후변화 이해확산을 위한 제주기상과학홍보관을 운영 중에 있음
※ 제주기상과학홍보관:지구환경 3차원 가시화시스템, 기후변화AR 등 기상기후과학 체험·전시시설
※ 공신정 터:제주성 북성 최고 경관을 지닌 정자인 공신정의 옛 터
※ 벚나무, 팽나무(수령 100년 이상):벚나무는 제주의 벚꽃 개화시기를 알려주는 관측목으로 지정
※ 심쿵투어 경품 제공장소
“재물을 잘 쓰는 자는 밥 한 그릇으로도 굶주린 사람의 인명을 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썩은 흙과 같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거상이자 조선최초의 여자CEO, 나눔과 봉사의 표상으로 유명한 김만덕.의인 김만덕의 삶과 그 정신을 기리고 본받기 위해 설립된 기념관이다. 김만덕기념관은 나눔과 베풂을 몸소 실천하시어 이 땅의 대표적 의인의 표상이 되신 김만덕의 삶과 그 정신을 기리고 본받아 널리 전파하기 위한 대한민국 최초의 나눔문화전시관이기도 합니다.
의인 김만덕은 조선시대 제주의 여성에서 대한민국을 뛰어넘은 세계적인 나눔과 봉사의 위대한 인물입니다.
성공과 성취를 이룬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역사는 나눔과 봉사로 남다른 삶을 살다간 의인들을 기리고 기억합니다.
또 많은 후대의 사람들이 그의 삶을 따르고 본받으려 합니다.
때는 정조 18년(1794). 제주 목사 심낙수가 조정에 급한 장계를 올렸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돌과 기와가 마치 나뭇잎처럼 날리더니 곡식이 바다의 짠물에 김치를 담근 듯 피해를 입었다” 는 것.
그리하여 제주를 덮친 흉년은 고금에 드문 것이라 당장 2만 섬의 구호미를 긴급 요청하였다. 조정에서는 순차적으로 2만 섬을 보내기로 하지만, 곡식을 싣고 출발한 수송선마저 풍랑에 침몰하면서 제주에서는 아사자가 속출하고 만다. 이때 나선 것이 산지항에서 객주를 운영하던 행수 김만덕이었다. 어린 시절 너무도 가난하여 기녀가 되어야 했던 과거를 지닌 김만덕은 누구보다 배고픈 설움을 잘 알았다. 기녀의 신분에서 꿈에도 그리던 양인이 된 후, 객주를 차려 번 돈을 털어 곡식을 사서는 배고픈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녀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줄잡아 일천수백 명.
김만덕 객주는 김만덕 기념관에서 약200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200년 전 김만덕 객주의 모습을 재현한 현대판 객주로, 객주 일부를 주막으로 운영하며 제주도 향토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고가(古家)와 객주 시설, 조선시대 제주도민들의 생활과 제주의 특산품들, 당시 제주도의 객주에서 취급한 물건 등 옛 제주도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많은 볼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