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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촌유래

이호동은 제주시 중심에서 서쪽으로 6km 어간의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행정구역상 이호 1동, 2동으로 나뉘는데 1동은 "동마을", "서마을", "중앙마을", "현사마을", 2동은 "대동마을", "오도마을" 등 6개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속칭 "백계(흰모래가 많은 표구동네)" 라고도 불리는 본동의 설촌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70여년전(1728년쯤) 이호동 438번지에 성씨 미상의 사람이 살았는데 천재지변으로 하룻밤 사이에 모래가 뒤덮여 버려 마을이 없어졌다가 그후 박씨가 이호동 540번지에, 홍씨가 507번지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설이 있다.

한편 현사마을은 바닷가에 모래가 검기 때문에 속칭 "검은모살" 혹은 "덕지동" 이라 불리는데 이 현사마을 역시 본동과 같이 천재지변으로 하룻밤 사이에 마을이 매몰 되었다가 그후 1812년쯤 "정주현" 씨가 마을 바닷가 쪽에 처음 입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 동네는 한편 논이 있기 때문에 "덕지답" 혹은 당이 있기 때문에 "남당" 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대동마을은 현재의 주민센터에서 일주도로를 건너 남쪽으로 약 1k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호동 6개의 자연부락중 제일 작은 마을이다. "대동마을" 이란 이름은 현재 이 동네에 많이 사는 경주, 광산 김씨들이 같이 입주하여 살았던 데서 연유한 이름인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광산 김인 김윤구씨는 지금부터 약 260년전 애월읍 광령리에서 옮겨와 속칭 "과원밧(이호동 234번지)" 에 정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후 양씨도 이곳 "맷밧" 에 옮겨와 살았으며 마을에 "억삼이지새터" 등 지명들이 있어 여기 살았던 사람들의 내력들을 짐작케 하고 있다.

한편 "오도마을" 은 지금부터 약 300여년전 고전적이란 풍수사가 이 마을 886번지에 처음 정착하여 살았고 그 후 양훈장이 이 마을 893번지에 옮겨와 살면서 서당을 차려 학문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그 후 대동마을에 살고 있던 김씨의 후손들이 번창함에 따라 1830년을 전후해서 이 동네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 이호란 지명이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포구동네 즉 백자가 이자로 바뀌고 "덕지답" 이란 못이 있어 마치 호수 같다 하여 호자를 넣어 이호라고 불린다는 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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