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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촌유래

용담동 지역에서는 청동기 및 초기 철기시대(B.C 10세기 ~ A.D 전후로 추정), 그리고 탐라전기에 속하는 주호시대(A.D 500년) 무덤 유적들이 많이 발굴되었다.

985년 1월, 당시 제주대학교 민속박물관 조사단에 의하여 용담2동에서 발굴된 옹관.석관묘에서는 철제 장.단검, 화살촉, 철도끼, 마제석검, 홍옥 구슬 등의 부장품이 나온 바 있다.

용담 지역에서 발견된 고인돌(支石墓)에서도 돌화살촉, 돌칼, 돌도끼, 토기 등이 나왔다. 특히 용담동 지역의 고인돌들은 '한내(漢川.大川)'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이로 볼 때, 오랜 옛날부터 '한내' 지역을 중심으로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순조 27년(1827) 제주향교가 광양에서 지금의 용담1동 298번지로 이설되고, 1920년을 전후하여 제주읍성 밖으로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차츰 자연부락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기록상 용담동 지역에서 설촌 역사가 가장 오랜 곳은 '한내'와 '병문내' 하류에 있는 '한두기[한데기]'다. '용연'을 기점으로 동쪽을 '동한두기', 서쪽을 '서한두기'라 한다.

처음에는 '한독[大甕.大獨]'이라 하다가 마을이 커져 가자, 현재의 '동.서한두기' 지역을 통칭할 새로운 마을 이름이 필요했다. 그래서 큰 옹기처럼 생긴 갯가의 마을이란 뜻으로 '대덕개.대독개[大甕浦]'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 후 '용(龍)이 사는 못'이라는 뜻을 지난 '용담(龍潭)'으로 개명했다. 이것은 '한내'하류에 있는 명승지 '용연[龍淵]'에서 유래한 것이다.

1955년 9월 1일자로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되고, 같은해 12월 31일자로 읍 당시의 25개 법정리가 40개 행정동으로 개편되면서, '용담리'는 3개동으로 나뉘어졌으며, 1962년 1월 1일 제주시 40개 동(洞)이 14개 행정동으로 통합되면서 용담1.2.3동이 '용담동'으로 개편되었다.

1977년 11월 1일에는 25개 법정리가 40개 법정동으로 개편됐으며 1979년 5월에는 17개 행정동으로 1983년 10월 1일 다시 18개 행정동으로 되었다. 그리고 1985년 10월 1일에는 용담동이 용담 1.2동으로 분동 됨으로써 제주시 행정동은 현재 19개 동에 이르게 되었다.

용담동지(2001년 발간)에서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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